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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현물 ETF가 열어준 길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3일 10시 2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pixabay)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지난 10일 블록체인 업계가 염원하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됐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기존 가상자산 거래 인프라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투자 접근성 면에서 ETF와는 비교할 수 없다. 특히, 현물 ETF는 투자되는 자금의 규모만큼 비트코인을 사야 하기 때문에 신규 자금 유입에 중요한 계기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상승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고점대비 15% 넘게 하락했다. 투자 업계의 오랜 격언인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투자 수요가 당초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고 오히려 자금 순유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월 22일 기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총 운용자산은 269억달러(약 36조590억원)를 기록하고 있는데, 기존 운영하던 비트코인 펀드를 ETF로 전환한 그레이스케일의 GBTC가 229억달러(약 30조6560억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GBTC는 ETF 출시 이후 무려 57억달러(약 7조6305억원)가 순유출되며 현재 비트코인 가격 매도 압력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GBTC 자금 유출의 이유로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1.5%나 되는 GBTC의 높은 연간 운용보수가 한몫하고 있다. 참고로, 타사 ETF의 경우 운용보수는 0.2%대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ETF 전환 이전의 GBTC는 환매가 불가한 펀드로, 이로 인해 한때 -5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디스카운트가 발생하고 있었다. GBTC가 ETF 전환되면서 환매가 가능해지고 디스카운트도 해소됐는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아닌 차익거래를 노렸던 투자 자금의 유출도 상당 부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가상자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모두 떨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금융위원회는 국내 증권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취급을 금지했다. 뿐만 아니라 뱅가드 및 메릴린치 등 글로벌 주요 운용사 역시 자사 플랫폼에서 가상자산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 현물 ETF가 보여주는 실적이 그저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269억 달러에 달하는 총 운용자산은 은 ETF의 110억 달러(약 14조7454억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비트코인 ETF의 벤치마크로 흔히 인용되던 금 ETF 역시 출시 직후에는 드라마틱 한 자금 유입이 일어나지 않았고 십여 년 걸쳐 서야 현재 2000억 달러(약 268조원) 수준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이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강하게 추진하는 만큼, 본사 및 하위펀드에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주요 운용사인 피델리티는 2022년부터 이미 미국 퇴직연금(401K)에 비트코인 펀드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에 가상자산 업계에서 기대하는 자금유입은 느릴지언정 밀물처럼 차오를 것이라 예상된다.


작년 가을 블랙록의 ETF 신청으로 시작된 비트코인 랠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올해 4월 비트코인 반감기를 앞두고 그 기세를 몰아 단숨에 비트코인이 1억원까지 상승하길 바라던 투자자도 많았을 것이다. 


아쉽지만 어찌 보면 진즉 끝났어야 할 이슈가 뒤늦게 해소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 지난 2021년 상승장을 돌아보면 마이크로스트레티지와 테슬라의 비트코인 투자 및 금융기관의 참여 등 제도권 자본의 유입이 그 동력으로 작용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은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ETF 승인 자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트코인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케 해주는 길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이 현재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탈중앙화 자산이자 '중립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에서 보듯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과 달러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달러의 공백이 발생하는 현재 아직은 비트코인이 강력한 대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세계 각지의 국부펀드가 매입하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국가 단위의 기관들이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싶어도 적절한 거래 상대나 인프라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은 으레 상대방의 대외신인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거래 관련 보안 및 대형 자금이 오가는 과정에서 상호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금까지는 그만한 격을 갖춘 파트너가 없었던 셈이다. 물론 블록체인 업계에도 점프, 윈터뮤트 등과 같은 대형 시장조성자 및 거래기관이 존재하지만 제도권 시각에서는 여전히 연혁이 일천한 신생 금융기관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자산 자체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SEC는 최초로 신청했던 그레이스케일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11개 운용사의 ETF를 승인했다. 현물 ETF는 구조적으로 이 운용사들이 직접 거래를 하며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기금같이 보수적인 기관은 이제야 투자를 제대로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국부펀드나 연기금은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라 기존 보유 자산과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이제 글로벌 제도권 시장에서 투자재로 인정받은 비트코인 역시 투자 대상으로 마땅히 고려될 것이다. 길이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 법이다. ETF가 그 길을 만들어줬고, 국가 단위의 기관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비트코인은 중립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때로는 혁신이 수요를 만든다. ETF 승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연 ETF가 비트코인에 그런 혁신이 될 수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박태우 이사는 2011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학사 학위를, 2015년 Columbia University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증권의 채권 애널리스트 및 한화자산운용의 Credit Strategist로 재직하며 10년 넘는 기간 채권 전문가로 활동했다. 또한,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계열사 두나무투자일임에서 맵플러스를 주도했다. 현재는 가상자산 생태계에 투자하는 크립토VC인 VistaLabs(비스타랩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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