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SK하이닉스가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외부 조달에 나선다. 메모리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끝물에 접어 들었지만 아직 본업으로 투자금을 충당할 수준은 아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 우위를 위해서는 투자가 꼭 필요한 만큼 재원 마련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내년 1분기 달러채나 유로채 방식으로 외화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달 주관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외화채 발행에 함께하는 주관사는 BNP파리바, 씨티증권, 크레디 아그리콜, HSBC, JP모건, 미즈호증권, MUFG, KDB산업은행 등이다. 

외화채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 대부분은 수요가 많은 HBM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4조원 규모의 설비투자(CAPEX)를 계획하고 있는데, 비주류 사업의 경우 일부 설비만 교체키로 결정한 만큼 수주형 제품인 HBM을 중심으로 생산능력(CAPA)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HBM의 가장 큰 응용처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학습에 사용되는 AI 가속기다. 지난달 말 기준 엔비디아에 주문한 AI 가속기 H100을 받아보려면 1년(52주)을 기다려야 한다. 대기 수요가 당초 10개월(40주)를 넘어선 것. SK하이닉스(HBM)와 TSMC(GPU)의 반도체 제조 속도가 시장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대비 수요가 커지면서 HBM 가격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HBM3 가격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보다 6~7배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내년 SK하이닉스 HBM 생산 물량은 이미 판매 완료(솔드 아웃)됐다.

정성공 옴디아 애널리스트는 "업데이트할 때마다 차세대 HBM 개발 일정이 당겨지고 있다"며 "HBM은 기존 제품보다 비싼 가격에도 교체 주기가 매우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내 병목 현상을 생각하면 HBM 생산능력(CAPA)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도 시장 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스마트폰, 노트북 등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완제품에 탑재되는 D램은 많은 양을 싼값에 판매하는 박리다매식 수익 구조로, 전방산업 업황에 따라 고객사 주문량이 달라지는 커머디티(원자재) 성격이 강하다. 반면 HBM은 기술 개발부터 고객사와 긴밀하게 논의한 뒤 판매가 약속된 물량만 생산하는 수주형 수익 구조를 갖고 있어 커머디티 제품에 비해 투자 부담이 덜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달 금융권과 (외화채 발행을 위한) 주관사 계약 체결을 시도한 건 맞다"면서도 "주관사를 선정했다고 매번 채권 발행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회사가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HBM 생산과 관련해 내년 뿐만 아니라 2025년까지도 대부분 고객사와 기술 협업 케파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HBM 생산량 확대를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해 외화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