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설동협 기자] 최근 삼성전자가 언급한 대규모 인수합병(M&A) 추진이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수급 난이 심화되면서, 자국 내 '반도체 업체 지키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시장에 본격 합류하겠단 뜻을 내비치면서, 이같은 추세는 더 강화될 조짐마저 보인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이렇다 할 만한 대규모 M&A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따른 영향이 컸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곳간은 차고 넘치는 상태가 됐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124조727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 규모도 104조5096억원 가량에 이른다.
놀고 있는 현금이 많다는 점이 삼성전자에겐 오히려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최근 삼성전자가 M&A 가능성을 공식화하면서 시장의 눈길은 반도체 부문에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M&A와 관련해 구체적인 분야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는 사실상 반도체 부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세우고 있는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을 위해서라도 관련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M&A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미 유의미한 진척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중에서도 유력하게 거론돼 오던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다. 최근 완성제조차량 업체들이 내연 기관에서 전기차로 시장 패러다임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부상한 영향이 크다. 차량용 반도체는 그동안 수익성이 적은 저부가가치 제품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 대비 전기차에선 차량용 반도체가 10배 가량 사용된다는 점에서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은 이미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차량용 반도체의 평균판매단가(ASP)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이를 고려하면 완성차업체들과는 달리, 서플라이어(공급자)인 반도체 업체로선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관련 M&A 후보에 거론되는 주요 업체는 ▲NXP ▲인피니언 ▲르네사스 등이다. 세 업체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자국 내 반도체 업체 지키기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NXP, 인피니언도 모두 유럽 국가 소속이다. 심지어 유럽연합(EU)은 약 500억유로(67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확보하겠단 뜻을 내비친 상태다. 다시 말해 자국의 알짜 기업을 삼성전자에게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삼성전자로선 이미 내부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업체 인수를 추진 중이라 하더라도, 기업결합심사 등 넘어야 할 산이 기존보다 더 높아진 셈이다. 업계에선 인수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속도를 더 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대규모 반도체 업체 인수까지 관문이 더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때마침,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주간의 옥중 격리를 끝마친 상태다. 주요 경영진과의 일반 접견이 가능해지면서 대규모 투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EU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지만, 한편으론 자국의 반도체 업체 산업을 보호하려는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인수를 나서기 위해선 결국 오너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이에 대한 검토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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