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경영환경 'ESG', 신중한 접근 필요"
허희영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전문위원 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이 기사는 2021년 04월 05일 09시 4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권준상 기자] 투자에 새로운 키워드 ESG가 등장했다. 전 세계 공적 연기금들이 환경(E)⸳사회(S)⸳지배구조(G) 세 가지 요소를 투자판단의 지표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탐욕으로 공격받던 글로벌 큰손들이 윤리적 책임투자의 개념을 도입한 게 배경이다. '나쁜 기업'을 가려내 투자를 제한하고 ESG를 개선하는데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자는 취지다. 


이 새로운 조류는 2006년 UN 차원의 책임투자원칙(PRI)이 마련됨으로써 자본시장을 주도하는 이니셔티브로 정착됐다. 처음 63개 기관이 서명할 당시 6조달러 남짓하던 투자재원은 작년 말까지 전 세계 3559개 기관투자가가 참여하면서 103조달러 규모로 늘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한 이슈가 포함된 투자분석과 기업 활동, 정보의 공개, 위탁기관의 책임투자 확대, 상호협력과 결과 보고 등이 PRI의 6대 원칙이다. ESG를 투자의 결정요소에 포함시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돕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목적이다. 


국내 업계도 이제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선 단순히 기관투자가의 PRI 확대에 대응하는 방어적 입장보다는 규제리스크를 줄이고 기존사업을 강화하고 신사업기회를 발굴하는 등 ESG를 중장기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일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도 바빠졌다. 2019년 도입했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작년엔 국내주식에 대한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사실상 국내주식 전부를 ESG의 적용 대상으로 확대했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중점관리사안은 배당정책과 임원의 보수, 법령 위반, 지속적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되지 않는 사안 그리고 정기 ESG 평가에서 C등급 이하를 받는 경우가 추가돼 모두 5가지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인 경우, ESG 관련 쟁점에 대해 중대성을 평가하고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의 정도를 판단해 비공개 대화에 이어 곧바로 주주제안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완화했다. 이미 833조원 규모로 늘어난 국민연금 운용투자액 전부에 ESG가 반영되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ESG 지표를 개발 중에 있다. 그러나 작업은 간단치 않다. 이미 개발된 지표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점으로는 첫째, ESG와 재무성과의 연계에 대한 문제다. 그 상관성에 대한 실증연구가 국제적으로 활발하지만 비재무적 성과가 재무적 성과를 보증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ESG 지표의 통일성 문제다. 재무적 성과의 경로를 설명하는 ESG지표의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통일된 지표는 없다. 그래서 업종별로 ESG요소의 중요성을 공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셋째, 섣부른 시장규제에 대한 우려다. OECD가 '유연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강조할 만큼 ESG는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투자의 기본원칙일 뿐이다. ESG가 새로운 투자환경을 만드는 글로벌 경영철학임은 분명하지만 글로벌 표준으로 정착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ESG투자를 위한 정보공시지표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는 사회적 이슈가 각 재무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데에만 6년간의 연구기간이 걸렸고, 이후에도 산업계와 투자업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 제정된 ESG 공시 역시 간단해 보이지만 최소 3개월 이상의 의견수렴을 거치며 그 내용은 모두 공개된다.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한두 번의 공청회로 마무리하는 성급함으론 ESG가 성공할 수 없다. 사법기관, 공정위와 금융위, 고용노동부 등의 공적 제재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투자한 기업에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연금도 주목한다. 그러나 연기금의 운영자들은 기업가치의 훼손이나 주주권익의 침해 여부에 머물러야 한다. 


앞서 여당 대표는 국민연금을 향해 "직원 사망사고를 일으킨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스튜어드십코드를 시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적 연금에 대한 정치적 압박인 셈이다. 지난 1년간 6명의 직원 사망사고를 낸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을 선택한 배경에도 국내의 엄격한 사업환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국내시장의 7.4%를 차지하는 거대자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신중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ESG를 도입하는 것은 그게 투자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맡긴 연금을 환경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돈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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