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일감 개방,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되길
직원 밥 먹이는데 오너일가 이익 개입 '있기 없기?'
이 기사는 2021년 04월 12일 08시 1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소재한 기아자동차 연수원 '기아 비전스퀘어' 내 사내식당의 모습. 2019년 말 풀무원푸드앤컬처는 현대그린푸드 등 대기업 급식회사를 제치고 이곳의 식음료 운영권을 따냈다.


[팍스넷뉴스 최보람 기자]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삼성·현대자동차·LG 등 국내 8개 그룹이 '단체급식 일감 나누기'에 머리를 맞댄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이번 합의의 골자는 발주처가 친족 급식회사와 수의계약으로 체결해 오던 관행을 깨는 것이다. 대기업 급식회사가 잠식한 시장구조를 개선함과 동시에 오너일가의 부당이익 취득을 방지하는 두 토끼를 잡겠단 취지다.


공정위는 이번 조처가 건전한 경쟁체제 확립, 일감몰아주기 논란 해소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계열사가 직원 밥 한 끼 먹이는 데도 당국 눈치를 봐야 하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기업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대기업 단체급식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역일 때 "회사가 직원들 밥은 챙겨야지"라는 취지로 시작됐다. 단체급식을 사내복지의 일환으로 봤기에 나올 수 있는 언사였다. 이런 측면에서 대기업이 생각하는 단체급식의 성격은 근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대기업 구내식당에서는 4000~5000원이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여의도·종로·강남 일대서 국밥 한 그릇 값이 7000원을 넘긴다는 점에서 기업은 직원들에게 값싼 식사를 제공, 일종의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만 보면 "이만큼 노력하는 데 왜 정부가 개입하나"라는 얘기가 충분히 나올 법 하다.



그런데 몇몇 기업을 보고 있자면 이러한 '선의'를 액면 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기업들이 급식으로 직원복지만 챙기는 게 아니라 그룹 오너들의 주머니까지 채워주고 있는 게 사실이어서다. 대기업계열 급식업체들은 회사의 급식사업부로 시작해 현재 독립법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다수다. 공교롭게도 대기업 급식업체의 직간접 최대주주에는 그룹 오너의 이름이 심심찮게 올라와 있고 이들은 계열 급식일감 덕에 상당한 이익도 거두고 있다.


시장 1위인 삼성웰스토리부터 이런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보유한 곳으로 삼성전자계열, 금융계열을 가리지 않고 그룹사 사내식당 수주를 따내고 있다. 이렇게 삼성웰스토리가 번 돈은 배당으로 모기업에 흘러갔고 삼성물산은 매년 최대 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자들에 배당 가운데 33.42%를 지급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오너일가의 곳간을 채워준 급식업체로 유명하다. 이곳은 소속돼 있는 현대백화점그룹 뿐 아니라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그룹 등 범현대가(家) 일감 덕에 시장 3위 사업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계 급식수주로 낸 이익은 최대주주(23.8%)인 정교선 부회장과 정지선 그룹 회장, 이들의 아버지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가외수익을 올리는 데 한몫했다.


이러한 사업구조에서 돈의 흐름은 '계열 및 방계회사→급식업체→오너일가'로 그려지는데 어디서 많이 본 도식이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오너일가의 사익편취 방식과 판박이다.


물론 이들 기업의 오너일가가 친족기업 물량 덕에 부적절한 이익을 봤다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대기업 급식업체들은 계열 및 친족회사와 체결한 수의계약으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만큼 오너의 사익편취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실제 공정위는 삼성그룹이 삼성웰스토리를 부당 지원한 혐의에 대해 조사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들에 단체급식 일감을 자발적 개방토록 유도한 것에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대기업 급식업계 일각에선 이번 조처가 매출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모양새인데 굳이 그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공정위는 입찰 방식을 수의→경쟁으로 바꾸는 데 중점을 뒀지 급식업체가 계열 및 친족회사 발주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적 없다.


여기에 대기업집단 내 급식회사 가운데 5곳은 시장의 80%를 점유할 만큼 사실상 과점시장을 구축해 놓은 상태다. 대규모 식수를 충분히 감당할 능력을 키웠고 큰 덩치만큼 규모의 경제도 시현했다. 수주과정이 조금 까다로워졌지만 대기업 급식회사가 독립기업과의 경쟁을 우려한다는 건 되레 이들의 역량을 무시하는 발상일 것이다.


이런데도 급식 일감 나누기가 불만인가. 그렇다면 돌아가신 선대 회장님을 떠올려 보시라. 직원들 밥 정돈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선의를.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팍스넷뉴스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