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시대 공부'
ESG, 마이데이터, 블록체인···실무자는 매일 CEO 설득에 진땀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3일 08시 2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이규창 금융증권부장] 2000년대 중반에 한국은행 간부가 영국 중앙은행 관계자를 만나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파생금융상품시장 전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영국 측 관계자는 '파생금융상품 리스크 중에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은 간부가 머뭇거리자 이 관계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no understanding risk'라고 말했다고 한다. 파생시장이 발달한 영국의 중앙은행 관계자조차 상품 구조와 리스크 등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유수의 대학을 나온 자칭 전문가조차 파생에 파생을 더한 상품 투자로 얼마나 손실을 입을지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허둥댔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대형 투자은행이 파산했고 이는 실물경제에도 막대한 해를 끼쳤다. 이후 각국의 금융감독당국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간혹 예상 범위를 벗어난 기초자산 가격 변동으로 파생금융상품 손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시스템 리스크로는 번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no understanding risk'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당장은 기업이나 금융회사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실무자가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CEO를 설득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록체인 기술 확산,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 시행 등 자고 일어나면 배워할 것 천지다. 단순히 기술 융합 정도가 아니고 업권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인 기업과 금융회사가 어떻게 변모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CEO가 모든 사안에 전문가일 수는 없기 때문에 CEO가 올바른 결단을 내리도록 돕는 일은 실무자의 몫이다. 또, CEO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결국 실무자가 고생하는 법. 특히 큰 줄기의 맥을 헛짚으면 기업 입장에서도 낭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적잖은 기업 오너나 CEO들이 ESG를 규제라고 인식하고 친환경 사업에 좀 투자하면 되는 쯤으로 알고 있다"며 "오너에 민감한 지배구조 이슈는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존 산업을 빠르게 잠식해가는 빅테크 기업을 경계하면서 실무자에게 무조건 화만 내는 CEO도 있다고 들었다"며 "이는 산업 융합을 이끄는 기술과 그 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실무자들이 유명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 CEO 설득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영끌', '빚투' 등 최근 개미 투자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단어가 많다. 하지만,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경제, 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개미 투자자도 늘어나고 있다. 투자를 위한 기반 지식을 습득할 채널이 다양해진 영향이기도 하다.


'no understanding risk'를 온전히 받지 않으려면 오너나 CEO도 부지런히 '시대'를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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