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승현 기자] 은행들이 학수고대하던 '은행 계좌로 실시간 ETF 매매'가 무산되면서, ETF로 빠져나가는 퇴직연금 지키기는 계속해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은행들이 요청해온 '실시간 ETF 매매 허용'에 대해 ETF 위탁매매 업무는 은행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 12일 '퇴직연금 ETF 편입 관련 비조치의견 요청' 회신을 통해 "ETF 위탁매매 업무는 은행에 허용된 집합투자증권 투자중개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은행이 증권사의 업무영역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은행의 퇴직연금과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ETF를 포함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금융위에 비조치의견서를 제출했다.

금융위는 해당 내용의 검토를 거쳐 "자본시장법 제98조에 위반된다"며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시장법 제98조 제2항 제8호는 여러 투자자의 투자일임재산을 집합해 운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금융위는 "신탁업자인 은행이 투자매매·중개업자의 주식중개서비스와 연동해 투자자에게 ETF 시세를 제공하고 투자자 운용지시를 받아 실시간 또는 일정 시차를 두고 신탁재산을 운용하는 것은 ETF 위탁매매 업무에 해당한다"며 "일반적인 펀드의 판매, 환매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퇴직연금 계좌 등에서 ETF를 운용할 수 있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선 ETF를 직접 매매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증권사의 고유업무로, 시장 내 교란 가능성도 고려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에 은행들의 퇴직연금 자금 지키기는 계속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퇴직연금 계좌 중 확정기여형(DC)·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로 ETF에 투자할 수 있지만, 이는 증권사 계좌로만 가능하다. 은행은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한 탓이다. 이에 은행은 당일 종가 기준으로 ETF를 매수해 다음날 신탁 재산에 편입하는 방식으로만 ETF를 매매하고 있다. 

최근 ETF 열풍과 함께 퇴직연금 자금들이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로 이동하는 '머니무브'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은행들은 자금을 지켜낼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투자회사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18.5% 증가할 동안, 은행은 15.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금융투자회사 51조7000억원, 은행 130조4000억원이다. 여전히 은행의 퇴직연금 규모가 훨씬 크지만, 점차 금융투자회사로 자금이 몰리는 모습이다.

사실 금융위의 이번 결과는 업계가 예상하던 대로다. 은행은 실시간 매매 경험이 전무한 만큼 한계가 많고, 은행업과 증권업을 구분하는 이유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은 실시간 매매 경험이 전무한 탓에 모든 시스템을 처음부터 구축해야 하는 만큼 비용과 노력이 상당할 것"이라면서 "그뿐만 아니라 은행과 증권사는 각각의 역할과 사업이 있는데, 은행에서 증권사 역할도 한다면 굳이 은행과 증권사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