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환율 상승세(원화가치 약세)가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3월 이후 처음으로 1270원대를 돌파했다. 외환당국이 "환율 오름세가 매우 빠르다"며 구두 개입 강도를 높이면서 29일에는 1250원대로 다소 낮아졌지만 이달 들어 다시 1300원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타는 이유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 예고와 중국 봉쇄 조치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 대외 악재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환율 상승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원화 뿐만 아니라 경쟁국인 엔화와 위안화 가치도 같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요즘 상황에서는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높이는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된다.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해 왔다. 삼성전자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남미, 아시아 등 전세계 곳곳에 제품을 수출하면서 현지 통화로 결제를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국내 공장보다 해외 공장의 생산비중이 높아져 환율 변동이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낮아졌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는 환위험에 노출된 외화를 일정 수준 헷지해 환율변동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리스크 최소화 노력에도 최근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원자재 가격상승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무게감은 예사롭지 않다. 국내 철강업체의 경우 철광석, 고철 등 원재료 수입비중이 높은 반면 내수 판매 비중이 높아 환율 상승이 수익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원료탄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은 2분기부터 실적에 본격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가 원자재값 상승 부담을 제품에 반영하면 자동차‧조선업계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포스트 코로나 기대감이 높아진 항공·여행업계도 환율 상승은 악재다. 원화 약세는 해외로 나갈 때 그만큼 경비가 높아지고 구매력은 낮아져 해외 여행수요를 위축시킨다. 항공사는 항공유 구입과 항공기 리스 비용을 달러로 지급하는 관계로 원화환율이 약세를 보이면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 

정부가 이달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면서 일상회복이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둔 경제여건은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각국의 식량 수출 통제를 촉발했고, 이는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금리는 오르고 주식시장도 외국인 매도세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민경제의 위기감은 통계지표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청의 '3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5% 쪼그라들고, 설비투자는 2.9% 감소하며 2개월째 내림세를 보였다.

환율이 불안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실물 경기가 위축되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된다. 환율은 우리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재정당국와 통화당국의 공조와 의지가 중요하다. 경제주체들이 신뢰를 갖도록 신·구 권력의 정권 교체기 외환시장 위기 관리에 빈틈이 없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