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IPO 몸값 부풀리기 유감
주관 경쟁 치열, 기업가치 고평가 빈번···투자자 수익률 하락, IPO 불황 초래
이 기사는 2020년 12월 10일 09시 2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전경진 기자] 증권사 기업공개(IPO) 실무자(IB·Investment Banker)들의 '거짓말'이 유독 만연하는 순간이 있다. 기업이 IPO에 돌입하기 위해 대표 주관사 선정 작업(입찰 경쟁)을 진행할 때다. 증권사들은 입찰 경쟁 과정에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기업가치를 묻는 기업 회장이나 대표이사를 조우하게 되고, 딜 수임에 성공하기  위해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몸값을 제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IPO 1건당 수익이 많게는 50억원을 상회하는 탓에 IB들은 딜 수임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상장 예정 기업에 대한 몸값 고평가는 올해와 같은 IPO 호황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입찰 경쟁을 진행한 기업들은 하나 같이 증권사들로부터 '조 단위' 몸값 진단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IPO 시장에서 너도 나도 공모주 투자에 참여하려고 하니 다소 높은 가격대(희망밴드)에서 공모를 진행해도 무리없이 청약이 완료될 것으로 가정해 측정된 기업가치들이다.


현재 주관사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인 카카오뱅크는 기업가치 거품과 관련한 비판을 받는 곳 중 하나다. IB들은 카카오뱅크의 몸값을 대략 20조원 안팎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국내 최상위 금융지주인 KB금융의 시가총액(19조원)을 넘는 가격이다. KB국민은행, KB손해보험, KB증권 등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사의 몸값이 이제 막 흑자전환에 성공한 인터넷은행보다 낮다고 본 것이다.


카카오뱅크의 20조원대 몸값은 최근 유상증자 과정에서 평가받은 8조원대 기업가치를 크게 상회하는 가격이다. 내년 하반기 IPO를 진행할 예정인데 1년 뒤에 기업가치가 최소 2배 이상 될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증권사 IB들이 빅딜을 수임하기 위한 입찰 경쟁 과열 속에서 높은 몸값을 기업에 제시하는 전략이 오히려 증권사의 IPO 수익 증대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자칫 기업이 고평가된 몸값을 고수해 실제 IPO를 진행할 경우 상장 후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이 경우 IPO 대신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는 투자처로 시중 자금이 흘러갈 개연성이 커진다. 


즉 올해 수임한 딜 한 건을 내년에 겨우 성사시켜 수익을 내더라도 후속 IPO 딜을 잇달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단순히 IPO 성사 난이도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칫 IPO 시장 불황마저 초래될 수 있다. 이 경우 증권사들은 올해 대거 빅딜들을 수임해놓고 정작 돈은 벌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다. IPO 주관 수익이라는 것이 딜 성사 이후 성공 보수 개념으로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2년여간 IPO 시장에는 조 단위 빅딜이 실종돼 있었다. 올해 IPO 시장 호황은 사실 낯선 일이다. 다행히 내년에도 시장 호황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크래프톤, 원스토어, 카카오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우량 기업들이 IPO를 추진하는 덕분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의 기업가치도 주관사 입찰경쟁 과정에서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IB들이 주관사 입찰 경쟁에서 보이고 있는 몸값 부풀리기 행태가 더욱 우려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당장 눈 앞의 빅딜 수임에 함몰돼 있는 형국이다. IPO 시장 호황이 단순히 올해만의 이례적인 일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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