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에 무슨 일이
사라진 캐시카우
①악재 겹치며 주력 유통·식음료 '흔들'···거의 전 사업부문 위기감
'신동빈의 오른팔'로 불렸던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급작스럽게 퇴진했다. 롯데그룹은 황 부회장 퇴진에 따른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러저러한 소문이 많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룹의 실적 부진에 대한 용퇴 또는 문책으로 알려져 있다. 용퇴든 문책이든 대기업이 조직에 큰 공을 세운 임원을 이처럼 비정기인사를 통해 내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러나 실적 부진도 맞다. 그만큼 롯데그룹의 사업이 거의 전 부문에서 신통치 않다. 그룹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동종 경쟁사의 움직임이나 실적을 고려할 때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 핑계만 댈 수만은 없다. 이에 따라 팍스넷뉴스는 한 때 '글로벌 롯데'를 꿈꿨던 롯데그룹 사업의 부진 이유를 따져보고 전망과 대안을 제시해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과 황각규 전 롯데그룹 부회장(오른쪽).


[팍스넷뉴스 이규창 기자] 재계 일각은 롯데그룹 위기의 시발점을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에서의 보복으로 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2015년 경영권 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분석이 대체로 더 많다.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015년 7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했다. 신동빈 회장은 무효라고 맞섰다. 여기까지는 국민에게 흔하디흔한 '재벌 형제간 분쟁 스토리'로 비쳤다. 그런데 신동주 회장이 동생을 공격하기 위해 매체와 한 인터뷰와 이제는 고인이 된 신격호 명예회장과의 나눈 대화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화가 모두 일본어였다. '롯데는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만 굳어졌다. 이는 한일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도 일본 제품을 일부러 피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소비재 중심 기업에는 달고 싶지 않은 낙인이다.


이후 2016년 검찰 수사, 2017년 사드, 2018년 총수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속, 2019년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제품 불매 운동 확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롯데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애써 기반을 마련해놓은 '글로벌 롯데'도 하나 둘씩 빛을 잃기 시작했다. 기반은 주로 인수합병(M&A)를 통해 이룩해놓은 것이었다. 롯데는 2002년 TGI프라이데이스 인수를 시작으로 적어도 2015년까지는 M&A 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다. 롯데케미칼이 2015년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 인수로 롯데 M&A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롯데의 식욕은 중국, 동남아, 유럽, 미국 등 지역을 가리지 않았고 식음료부터 호텔, 석유화학까지 쇼핑 품목도 다양했다. 특히 해외 피인수 기업은 초기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곧 안정을 찾았고 인수기업의 현금창출력에 보탬이 됐다.


그러나 롯데는 어느새 인수보다는 매각하는 쪽에 섰다.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통폐합하고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해 하반기 16개 점포를 정리할 예정이다. 급기야 '글로벌 롯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마저 물러났다.


롯데에 암운이 드리워진 배경에는 사드, 불매운동, 코로나19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롯데가 빠른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4월 말에 출범한 '롯데온(ON)'이 하나의 예다. 롯데쇼핑은 롯데 유통 계열사 7개 쇼핑몰의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통합한 온라인 쇼핑 플랫폼 '롯데온' 만들었다. 2018년 롯데쇼핑이 e커머스 사업부를 신설하며 '롯데온'의 출범을 준비했다. 하지만 어느새 롯데는 온라인 사업의 후발주자가 됐다.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겨우 출범한 '롯데온'도 사용자 편의성, 혜택, 물류 시스템 등에서 장점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의 느린 대처는 주력 계열사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백화점·마트·하이마트·슈퍼·홈쇼핑·컬처웍스 등을 아우르는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14억원이라는 초라한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2분기보다 무려 98.5%나 급감했다. 2분기 당기순손실은 2423억원이나 되면서 지난해 대비 적자전환했다. 매출도 전년동기대비 9.2% 줄었다. 홈쇼핑과 하이마트가 선방했으나 주력인 백화점의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40.5%나 줄었고 마트 적자폭은 확대됐다. 코로나19 여파라고는 하지만 유통 온라인 사업자들이 실적 호조를 나타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롯데칠성도 마찬가지다. 주력 부문인 음료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 상반기 롯데칠성의 음료 부문은 전년동기대비 4% 감소한 8193억원, 영업이익은 18.3%나 줄어든 64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LG생활건강 음료부문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동기대비 4.8%, 35.8%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LG생건의 실적 호조로 코로나19 핑계도 댈 수 없다. 영업이익이 역전된 상황에서 음료시장 매출 1위 자리도 위태롭다. LG생건과의 매출 규모 차이가 지난해 상반기 약 14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약 700억원 규모로 좁혀졌다.


롯데케미칼도 울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글로벌 가동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2분기에 대산공장 사고에 따른 일회성 비용까지 반영해야 했다. 2분기 롯데케미칼의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32.1% 감소한 2조6822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90.5% 줄어든 329억원에 그쳤다.


그밖에 해외 여행 제한으로 국내 호텔, 리조트가 반짝 반사익을 누리기도 했으나 최근 다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면세점 사업은 가장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부문은 거의 대부분 매각하고 롯데캐피탈만 남아 그룹의 이익기여도 자체가 작다. 그나마 잘 나가던 롯데건설도 올해 2분기에는 주춤했다.


실적 외 이슈도 녹록치 않다. 롯데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퍼즐인 호텔롯데 상장 일정도 코로나19로 불투명해졌다. 신동빈 회장은 형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일본 롯데와의 지분 고리를 끊고자 호텔롯데 상장에 역점을 두고 있다. 롯데지주 지분 11.1%를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그 관계사가 지분의 99%를 갖고 있다. 따라서 호텔롯데 상장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낮추고 지주 내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롯데그룹이 특히 고전 중"이라며 "재계 서열(5위)도 수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우려는 내세울만한 캐시카우가 없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영향이 지속되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확실한 자금원이 있어야 버티는데 롯데 사업구조는 너무 외부 변수에 민감한 것으로만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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