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기소 쟁점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시세조종일까
⑦증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병후 추가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책 유지'
검찰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11명을 기소한 사건은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을 넘어 국내 금융투자업계와 자본시장에도 큰 파장과 후폭풍을 가져올 메가톤급 사안이다. 자본시장 전문 미디어인 팍스넷뉴스는 향후 검찰과 변호인단이 다툴 공소사실의 핵심 쟁점에 대해 금융 및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관점에서 미리 살펴본다.

[팍스넷뉴스 권일운 기자] 검찰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위법으로 간주하는 사유 중 하나는 제일모직이 자기주식을 매입해 시세 조종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삼성물산 등 합병 반대 주주들의 매수청구권 행사를 억제하기 위해 제일모직이 자기주식을 매입,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다수의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제일모직의 시세를 조종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거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입을 모은다. 시가총액이 20조원대를 넘나들고 주주 수가 5만명에 육박하는 기업이 자기주식 4400억원 어치를 매입하는 것으로 주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이유다.


게다가 제일모직의 자기주식 매입은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다른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자기주식을 취득했고 ▲그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공시를 통해 주주들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알렸다는 점에서다.


또한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은 주로 삼성물산 주주들이었는데, 정작 자기주식을 매입한 곳은 제일모직이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검찰은 합병 비율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가 연동돼 있었고, 이를 위해 제일모직이 삼성물산 대신 자기주식을 매입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 주식이 개별적인 수급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제일모직 주가를 관리한다고 해서 삼성물산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은 '비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시총 30조'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세조종 '미션 임파서블'


시세조종은 통상 '주가조작' 내지는 '작전'으로 일컬어진다. 대표적인 시세조종 행위로는 통정매매나 위장거래가 꼽힌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짜고 일종의 담합 거래를 하거나, 동일인이 가상의 거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호가를 발생시켜 실제 거래를 일으키는 방법으로도 시세조종이 가능하다. 허위 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조종하는 경우도 있다.


시세조종으로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대부분 시가총액 수백억원 대의 기업 주식을 매집했다가 고가에 되판 경우다. 최근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난 J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J사 외에는 코스닥에 상장된 연예기획사 S사나 의류회사 C사의 시세조종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시세조종 범죄가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에서 일어나는 것은 시가총액이 적으면 적을수록 소액, 소량의 주문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움직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면가가 100원에 불과한 제일모직 주가는 공모가가 5만3000원, 합병을 추진하던 당시에는 10만원대 중반에 달했다. 소액주주들에게 분산돼 있는 주식은 2000만주가 넘었다. 금융투자(IB) 업계 종사자들이 "제일모직은 주가조작(시세조종)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삼성물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합병 무렵 주가는 5만원대 후반이었고, 이전보다 주가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시가총액이 1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다. 전체 발행 주식수의 57.4%(897만주)를 1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개별적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주가가 오로지 제일모직 주가와의 동조효과로 등락한다고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다.


◆ 자기주식 매입 시세조종, 단정 "무리수"


쟁점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자기주식 매입에 나섰고, 자기주식 매입 행위 자체가 시세조종에 해당하는 지로 넘어간다. 이에 대한 증권업계와 기업 재무 및 IR(투자자 관리)분야 종사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단 제일모직이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기주식 매입에 나선 것은 맞아 보인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주주들의 반대매수청구권에 대응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금이 양사 합계 1조5000억원이 넘으면 합병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이뤄졌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이 발표된 시점은 2016년 5월 26일이었고, 양사의 임시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시기는 7월 17일이었다. 제일모직의 자기주식 매입 계획은 1주일 뒤인 7월 23일 발표됐다. 합병 반대 주주들로부터 주식매수청구를 받아들이고 있던 시기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모두에게 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는 것은 절실했다. 막대한 시너지가 예상되는 합병이 자칫 무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이 자기주식 매입에 나선 것은 일단 자체적으로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합병 무산 기준이 '양사 합계 1조5000억원'으로 설정돼 있는 만큼 자사 주주들의 매수청구권 행사만 줄이더라도 원안대로 합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배당에 준하는 효과를 내는 자기주식 매입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경영학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다수의 사례로도 입증돼 있다. 하지만 자기주식 매입 자체가 시세조종과 같은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상당수 기업의 IR 담당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주식 매입은 주주 환원책으로 그 과정에서 주가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한 기업의 IR 담당자는 "자기주식 매입 계획을 발표할 때 주가 안정이라는 목적을 명시하지 않는 기업이 얼마나 될 지 되묻고 싶다"면서 "주가를 안정 또는 부양시켜 기업과 주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과연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배구조 개편이나 자금조달과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자기주식 매입과 같은 주주 환원책을 시행하는 것이 왜 나쁘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 제일모직 자기주식 매입, 절차상 하자 없어


일각에서는 제일모직이 자기주식 매입에 투입한 재원 4400억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고 있다. 2015년 상반기 말 기준 제일모직이 보유한 현금이 150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다. 제일모직은 당시 자기주식 매입 재원을 단기 차입으로 조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기주식 매입은 배당가능이익이 존재하는 한 가능하다. 인위적으로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 대금이나 주식을 할증 발행해 조달한 차액을 배당가능이익에 편입시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들 모두 적법한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된다. 현금 보유고와는 무관하다. 배당가능이익이 현금이라는 특정한 유형 자산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자기주식 취득 계획을 공시하면서 1조원 이상의 배당가능이익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혔다. 제일모직의 배당가능이익 역시 현금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배당가능이익을 미래가치가 훨씬 더 높을 것이 확실시되거나 영업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자산으로 바꿔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면서 "배당과 같은 주주 환원책을 실시할 때 그 자산을 곧바로 현금화하는 대신 차입을 일으키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경영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 합병후 추가 자사주 매입…주주환원책 유지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제일모직의 자기주식 매입이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끝난 이후에도 이뤄졌다는 점이다. 제일모직 자기주식 매입이 합병 성사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새운 '원 포인트' 주주 환원책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제일모직은 2015년 9월 1일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성사시킨 뒤 사명을 삼성물산(이하 통합 삼성물산)으로 바꿨다. 통합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시절 발표해 놓은 자기주식 매입 계획안을 완전히 이행했다는 내용을 10월 16일 공시했다. 


해당 공시에 따르면 통합 삼성물산은 합병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뒤에도 9월 15일부터 10월 8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자기주식(통합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통합 삼성물산이 매입한 자기주식은 511억원 어치였다. 제일모직이 발표한 예상 취득 금액 4400억원의 10%를 넘는 수치다.


제일모직은 애당초 자기주식 매입이 10월 말까지 진행될 것임을 못박아 놓았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제로 이행했다. 시세조종은 통상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해야 성사 가능성이 높은 반면, 제일모직은 적어도 자기주식 매입과 관련해서는 충실한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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