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재석 기자]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5조원 규모 국고채 매입 계획을 밝히며 8월 이후 가파르게 오르던 국고채 금리가 숨고르기에 들어섰다. 채권업계에서는 한은이 밝힌 단순매입 물량이 4차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 발행 물량을 해소하긴 역부족이나 시장의 불안심리를 극복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급한 불은 껐지만 해결할 문제도 남아있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채권 전문가들은 수급부담 우려에 따른 한은의 재정대응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국채 매입계획을 정례화하고 변동성이 높은 10년 이상 장기물을 주로 매입해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은의 국고채 매입 발표 이후 채권시장 금리는 장기물 중심으로 소폭 개선효과를 보였다. 한은이 단순매입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8일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각각 3.4bp, 3.7bp 씩 하락한 0.975%, 1.577%를 기록했다. 발표이후 외국인의 국채선물 순매도세로 주 후반 금리가 반등하기도 했다. 매입 발표로 시장금리 상승세가 다소 진정됐지만 하락세로 돌아설만큼 영향을 끼치진 못한 '반짝 효과'를 거둔 셈이다.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말부터 불안전한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4차 추경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대규모 재정지출을 동반하는 내년도 예산안이 가시화되자 국내 채권시장에선 수급 불균형에 따른 우려로 금리가 상승했다. 9월 첫째 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8월 19일 이후 13.3bp 상승한 0.94%, 10년물 금리는 18.8bp 상승한 1.54%를 기록했다.
국내 채권업계 전문가들은 한은의 단순매입 계획이 실제로 금리를 낮추기보다 채권시장을 안정화하는데 의미를 두고있어 금리 완화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경안보다 낮은 금액을 매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국채 매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시장금리를 인하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향후 있을 변동성을 차차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라며 "한은 입장에서도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건 자산가격을 왜곡시키는 일이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급한 불은 껐지만 한은의 불확실한 재정대응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정부가 밝힌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오는 2021년 국고채 발행량은 172조9000억원으로 이미 올해 4차 추경을 합산한 금액(174조원)과 유사한 상황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로 언제든 추경이 진행될 수 있어 올해와 같은 수급부담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채권업계에서는 한은이 채권 단순매입 기간과 종목 등을 정례화시켜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명실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은이 내년에도 재정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예고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확한 규모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아 불명확한 점도 존재한다"며 "보다 중장기적 시각으로 한은이 국고채 시장에서의 매입 규모, 매입 구간과 대상 종목 선정 기준, 매입시기 등을 정례화해 시장 수급 불균형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날로 늘어가는 정부 예산안과 그에 따른 국채 발행량 부담 증가가 일회성 재정 대응으로 해소될 만한 사항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매입하는 국고채의 잔존만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은은 올해 4차례에 걸쳐 매회마다 1조5000억원씩 총 6조원의 채권을 매입했지만 그중 잔존만기가 10년 이상인 국채는 전체 비중의 10% 내외에 불과했다. 대부분 잔존만기 5~7년 가량의 매물에 집중된 셈이다.
신동수 연구원은 "채권 금리의 추이를 봤을 때 중단기물보다 2~30년 이상의 장기물이 금리 상승폭이 컸으므로 내년도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장기물의 수급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며 "한은이 잔존만기가 10년 이상 국채를 매입하거나 비지표물을 위주로 매입한다면 채권 시장에선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는 모멘텀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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