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이건희가 사랑한 자동차·스포츠
삼성 경영 외에도 폭 넓은 스킨십

[팍스넷뉴스 류세나, 설동협 기자]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 경제사에 길이 남을 기업인이다. 동시에 체육계에서는 그를 '열정 넘치는 스포츠 외교관', 또 자동차업계에서는 '성공한 자동차 광'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는 삼성을 넘어 스포츠·자동차 산업에 두루 애정을 갖고 활동해 온 그의 이력 때문이다.


◆ 재계 리더 이건희 또 다른 이름 '체육인'…'키다리아저씨'로 통해


2012년 7월, 런던 한국선수촌을 방문해 여자배구단과 만난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기업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사(史)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야구, 축구, 농구 등 인기종목뿐만 아니라 스키, 탁구, 테니스 등 비인기 종목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엔 세계 스포츠로 무대로까지 보폭을 넓혔는데, 2011년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결정되기까지 이 회장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했다. 탁구와 테니스, 골프, 그리고 스키에서 수준급 실력을 보였다. 또 고등학교 재학시절엔 레슬링 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 인연을 계기로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21~24대)을 역임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에서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등 총 40개의 금메달을 따는 등 황금기를 보냈다. 


그의 스포츠 사랑은 끝을 몰랐다. 삼성 스포츠단을 만들어 야구, 축그, 테니스, 배드민턴 등 인기 유무를 가리지 않고 투자했다. 스포츠단 운영에 들어가는 돈만해도 연간 1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또 삼성은 20년 넘게 IOC를 후원하는 '큰 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제 스포츠계에 한국체육이 입지를 다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로컬 스폰서로 올림픽에 처음 참여했고, 97년부터는 지속적인 후원계약을 맺으며 최고 레벨 후원사로 등극했다. 올림픽 메인스폰서는 최소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 넘게 후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국내 스포츠사에 있어 가장 크게 남긴 족적은 평창올림픽 유치다. 이 회장은 IOC 위원에 선출된 이후 스포츠 외교에도 힘썼다. 특히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1년6개월간 그가 비행기에 몸을 실은 횟수만해도 11회에 달하고, 출장일수로는 170일에 달한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 이름이 불리자 이 회장이 감격의 눈물을 쏟은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된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사랑은 경영철학으로도 연결됐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 없이 승리할 수 없고, 모든 승리는 오랜 세월 선수·코치·감독이 삼위일체가 돼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임원진들과도 스포츠 스킨십을 종종 가졌다. 이 회장은 계열사별 사장단과 스키행사를 가지며 스킨십을 강화하고, 차세대 개발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수시로 그룹 인사들을 초청해 스키를 타며 그룹 경영을 논의해 '스키경영'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다. 


◆ 남다른 자동차 수집 마니아…사업서는 '쓴 맛'


1994년 불룸버그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 표지에 실린 이건희 회장 모습.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마니아로 잘 알려져있다. 벤틀리,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각종 명차는 기본, 해마다 나오는 최고급 신차를 정기적으로 수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계에선 이같은 이유로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이 회장의 취미가 사업으로 이어진 유일한 케이스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회장 취임 직후부터 자동차사업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될 정도로 그의 자동차 사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의 매출을 넘어서려면 단가가 높은 완성차 사업이 제격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1995년 3월 자본금 1000억원 규모로 삼성자동차가 출범시킨 뒤, 2010년까지 연간 10만대 규모의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사업을 시작해 나갔다. 문제는 부대 시설비였다. 현대자동차의 공장 유지비와 비교해 삼성은 수 배에 달하는 돈이 지출 됐다. 생산효율화가 떨어졌던 탓이다.


결국 차를 팔 때마다 오히려 손실이 나는 악순환이 이어진 상황에서 때마침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게 된다. 1998년 정부는 5대그룹도 부채비율이 높아 구조조정을해야 한다며 잘하는 산업을 그룹별로 모아준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삼성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아차 도산 사태 등에 따라 금융당국은 삼성에도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자동차 사업에 갓 진입했던 삼성은 뒤로 물러 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고 이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삼성자동차를 포기하게 된다. 삼성자동차의 첫 모델인 SM5를 공식 판매한 지 1년도 채 안되던 시점이다. 그는 삼성자동차를 법정관리에 맡기고,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증여하기로 약속한다. 근로자와 하청업체에 대한 보상안도 내놓았다. 이후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인수됐다.


SM5는 첫 모델인 이유 탓인지 고 이 회장의 애정을 듬뿍 받은 승용차다. 직접 로고 제작에 참여하고, 업무용 차량으로 이용하는 등 많은 애착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SM5는 내수 시장에서 지난 21년간 97만 여대, 수출 5만 여대 등 총 102만여대가 판매된 국내 중형세단의 상징적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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