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부 끝낸 재계, 신경영 새판짜기
오너일가 전진배치…비주력 사업 줄이고, M&A도 속력


[팍스넷뉴스 류세나 기자]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새 판 짜기에 속도를 올려 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유례없던 전세계 경제위기 상황을 겪은 이후, 불확실성에 보다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탈바꿈중이다. 새 진영 구축을 위해 연말 정기인사 시점을 예년보다 앞당기는 가 하면 동시에 비주력 사업 정리,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에도 쉴 틈 없이 나서고 있다. 


◆ 위기 속 오너십 강화…'혁신·변화' 추진력 장착


재계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응을 위한 카드로 가장 먼저 '인사'를 꺼내 들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산업지형에 대비하고, 이에 맞춘 형태로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대차, 한화, 신세계 등은 오너 경영인을 보다 전면에 배치, 오너십을 바탕으로 강력한 쇄신과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오너 3세인 정의선 회장 체제를 맞았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기에 발맞춰 그룹 체질 개선에 속도를 올리고, 코로나 위기와 미래 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수소차를 필두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 대한 확장을 꾀하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은 올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상위 기업 총수들과의 회동 횟수를 크게 늘리는 등 앞으로 재계에서도 광폭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왼쪽부터)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신세계그룹도 차기 후계자로 꼽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최대주주로 오르며 대대적인 혁신이 예고되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지난 9월 두 자녀인 정 부회장과 정 사장에게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이마트-신세계 지분을 증여한 데 따른 결과다. 


재계에서는 후대로의 권력 이양 작업과 함께 신세계 2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이마트 부분은 최근 정기인사를 한 달 반 가량 앞당겨 진행했는데, 주요 계열사 11곳 중 절반이 넘는 6곳의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전체 임원 규모도 10명 가량 줄였다. 


이는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고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 소매업 하락세가 가팔라진 데 따른 쇄신책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교체된 6개 계열사 대표도 모두 1960년대생으로, 이마트는 젊은 조직으로의 변화를 추구했다. 정 사장이 주도하는 신세계백화점 또한 연말 인사에 정 사장의 색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에서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 부사장이 부사장 발탁 9개월 만에 사장·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 외에 신동빈 롯데 회장의 외아들인 신유열씨가 최근 일본 롯데 경영에 합류, 경영수업을 밟고 있고, 한때 대마초 논란으로 잡음을 냈던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재현 CJ 회장 아들)은 상무 승진설이 지펴지고 있다.


◆ 포트폴리오 구획정리…쪼개고·붙이고·만들고


재계는 비주력 사업에 대한 정리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더욱 절실해진 미래 성장동력 확대에 집중하기 위한 선제조치다. 이 과정에서 주요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규모의 투자와 M&A에도 함께 나서도 있다. 


삼성전기가 와이파이 모듈 사업과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 사업 중단을 검토중이다. 와이파이 모듈 사업의 경우 이미 예비입찰을 진행했고, RFPCB는 최근 고객사들에게 공급중단 계획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사업들을 정리하는 대신 5G 통신과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고부가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회사 측은 최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에서 확정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에선 이미 관련 작업들이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는 오래 전부터 처분을 고심해 온 분산탄 사업을 종업원 지주회사 형태로 매각키로 했다. 그룹의 차세대 주력사업인 태양광 사업을 해외에서 확대하기 위해선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되는 분산탄 사업 정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스크도 크고 상대적으로 매출 규모도 작은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주사인 ㈜한화는 최근 경영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무역부문의 유화사업은 화약·방산부문으로, 기계사업은 기계부문으로 통합하기도 했다. 


LG이노텍은 발광다이오드(LED) 제품 생산중단 계획을 최근 확정지었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온 사업분야에 대한 정리 차원이다. 조명용 LED, 백라이트유닛(BLU) 등 공급과잉, 그리고 시장 축소로 수익성이 떨어진 탓이다. LG이노텍은 올 12월까지만 제품을 생산하고, 고부가 제품인 차량용 조명모듈 분야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오히려 코로나19가 폐업 직전이던 사업분야를 일시적으로 심폐소생한 사례도 있다. 삼성과 LG 등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연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국내생산을 중단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TV 수요가 늘면서 당분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당분간 LCD 생산을 지속하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할 때 뒤따르는 이익 하락을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재계의 움직임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그간 롯데는 배터리 투자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다. 롯데알미늄이 양극재 소재인 알루미늄박을 생산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반전됐다. 


롯데는 계열사인 롯데정밀화학을 앞세워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된 '스카이스크래퍼 롱텀 스트래티직 사모투자 합자회사'에 2900억원 출자를 결정했다. 두산솔루스는 자동차 배터리 분리막 소재로 쓰이는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재계는 재무적투자자로 2대주주가 된 롯데정밀화학이 앞으로 두산솔루스에 얼마만큼의 투자를 추가적으로 진행할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재계의 대표적인 M&A 건은 SK하이닉스의 인텔의 낸드사업부문 인수다. SK는 D램 반도체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분야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해 10조3104억원을 베팅했다. 이는 국내기업 사상 최대 M&A 계약건으로 꼽히는 삼성의 하만(약 9조원) 인수 투자액을 뛰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SK하이닉스는 현재 D램 부문에선 세계 2위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4~5위 수준인 낸드 점유율도 2위로 뛰어 오르게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인들 사이에 지금과 같은 방식의 사업으론 생존하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퍼져있다"면서 "4차산업시대, 포스트 코로나를 계기로 한 단계 더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크다. 기업들간 합종연횡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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