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숨 돌린 NH證, 낙하산 논란 반복되지 않길
윤병운 부사장 차기 대표 후보 낙점…불편한 동거는 '우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2일 08시 3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e radeau de la Méduse. (출처=루브르박물관 홈페이지)



[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1816년. 프랑스가 아프리카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해군 군함 메두사호를 파견했다. 배에는 승무원과 승객 약 250명이 타고 있었다. 선장은 뒤루아 드 쇼마레. 망명 귀족 출신으로 항해 경력은 없었으나 당시 국왕인 루이 18세의 측근이었다는 이유로 임명된 '낙하산' 인사였다.


메두사호는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초에 걸려 침몰하고 만다. 드 쇼마레를 포함한 귀족·장교가 먼저 구명정에 탑승했다. 남은 150여 명은 급히 만든 뗏목에 몸을 실었다. 2주에 걸친 표류 기간 수십 명이 사망했고 10명이 구조됐다.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을 그렸다.


작품 공개 직후 사건을 은폐하려던 프랑스 정부를 향한 사회·정치적 비판이 이어졌다. 능력 없는 지도자가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교훈도 되새겼다. 그럼에도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주인공은 자기자본 규모 국내 3위 NH투자증권으로 최근 차기 대표 선임 과정에서 논란을 겪었다.


지난달 증권업계에서는 정영채 사장 후임에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유 전 부회장은 기획조정본부장, 농협자산관리 대표 등을 지냈다. 뒷배로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목됐다. 강 회장이 '농협중앙회→농협금융지주→NH투자증권'의 지배구조를 활용, 최측근을 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로 선임해 계열사 인사에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 전 부회장은 강 회장의 후보 시절 당시 꾸려진 선거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강 회장도 공식 임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유 전 부회장 지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증권맨'이 최고 경영자(CEO)에 선임되는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계열사 간 일체성을 높이고 인식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증권사는 수익 창출 사업 분야가 다양하고 시장 변화가 빨라 타 산업 대비 CEO 역량·이해도가 중요하다. NH투자증권이 그간 자본시장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CEO 자리에 앉혀온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 사장 역시 용퇴를 결정하면서 자본시장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NH투자증권은 엄연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다. 농협금융지주가 지분 56.82%를 보유하고 있으나 소액 주주 비중도 34.40%에 달한다. 주주가치를 염두에 둔다면 소수가 아닌 다수 의견이 반영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하게 관행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 자본시장 비전문가를 대표에 앉히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미다.


논란이 커지자 금융당국도 개입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NH투자증권에 대한 수시·사전 검사를 시작했다. 110억원 규모 농협은행 배임 사고뿐 CEO 후보 선정 절차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강 회장 간 파열음이 들리기도 했다.


시장 우려 속 NH투자증권은 11일 오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이사회를 열고 차기 대표이사 사장 최종후보로 윤병운 IB1 사업부 대표(부사장)를 선정했다. 윤 부사장은 정영채 사장과 함께 NH투자증권이 IB 명문 증권사로 성장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숏리스트 인사 중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이로써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NH투자증권 간 신경전도 잠시 사그라드는 모양새다. 다만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강 회장은 취임 후 첫 계열사 인사에서 영향력을 끝까지 발휘하지 못했다. 윤 부사장 역시 리스크 관리 등 사업 과제뿐 아니라 금감원 검사를 비롯한 지배구조 관련 이슈에도 대응해야 한다.


'인사만사(人事萬事)'. 좋은 인재를 발탁, 적재적소에 배치해 모든 일을 순리대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윤 부사장은 이달 말 주주총회에서 대표로 선임된 뒤 2년의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강 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부디 2년 뒤에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기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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