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신춘호 영면
자본금 500만원…2조 회사로 키운 '라면왕'
장인정신 강조, 1985년 이후 36년간 국내 라면시장서 압도적 1위
이 기사는 2021년 03월 27일 12시 1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호정 기자] 한국의 '라면왕'으로 불렸던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이 92세의 일기로 27일 별세했다. 지난달 5일, 그가 농심의 새로운 도전을 주문하며 56년 만에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지 1달여 만이다.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1958년부터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 명예회장을 대신해 한국 롯데그룹을 이끌었다. 그러나 1963년 신 명예회장과 라면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은 끝에 1965년, 자본금 500만원을 들여 롯데공업(현 농심)을 창업했다.


신 회장이 독자경영에 나섰을 당시만 해도 국내 라면업계 후발주자인 데다 형인 신 명예회장의 견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75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로 인기를 끈 '농심라면'이 큰 인기를 끌면서 신 명예회장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며 사명 역시 현재와 같은 농심으로 변경했다.


농심라면 출시 이후 농심은 그야말로 매년 히트작을 쏟아내며 승승장구 했다. 1982년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 등을 연달아 출시한 것. 이는 라면의 맛과 품질이 수프에 있다는 신 회장의 고집으로 경기도 안성시에 수프 전문 공장을 세운 결과였다.


이 덕분에 농심은 1985년 국내 라면시장에서 4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보적 1위로 발돋움한 후 36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울러 신 회장의 역작인 신라면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신 회장은 라면 외 스낵 시장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가진 인물이다. 1971년 그의 손에서 탄생한 '새우깡'의 경우 ▲오징어 먹물 새우깡(1995년) ▲코코아 새우깡(1996년) ▲매운 새우깡`(2000년) ▲쌀 새우깡(2004년) 등 변주되며 반세기 동안 국민 간식으로 군림하고 있다.


아울러 감자깡, 꿀꽈배기(1972년), 고구마깡(1973년), 인디안밥(1976년), 바나나킥(1978년) 등 현재도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도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탄생가능 했다.


농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신춘호 회장 스스로 본인을 '라면쟁이', '스낵쟁이'이라 일컫으며 임직원들에게 '장인정신'을 강조했다"며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선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신 회장의 평소 경영철학이었다"고 전했다.


신춘호 회장의 이 같은 경영철학 덕에 농심의 자본총계는 작년 말 기준 2조490억원으로 창업 당시에 비해 4098배나 불어났다. 나아가 매출액은 2조6398억원으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최초 기재한 1994년에 비해 3배나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1603억원으로 같은 기간 32배 급증했다.


한편 농심의 차기 회장 자리는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신 부회장은 지난 25일 개최된 정기주주 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신 부회장은 농심의 최대주주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작년 말 기준 42.92% 보유 중이다. 아울러 2000년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경영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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