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블록]
캐즘의 덫에 빠진 웹3.0
블록체인 혁신 이제 겨우 시작, 실용주의자 계층 공략 통해 주류시장 진입해야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9일 10시 3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지난 달 필자는 미국 덴버에서 열린 ETHDenver 2024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에는 4만 명 가량이 운집하며 성황을 이루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이런 수 만명 규모의 대형 블록체인 이벤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개최되고 있다.


이번 덴버 일정에 동행한, 최근 웹3.0에 발을 들인 지인의 감상이 흥미로웠는데, 웹3.0 업계 전반에 들끓고 있는 이 에너지를 자신은 왜 여태 모르고 있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언론의 책임이 있다는 크다고 성토했다.


물론 언론의 역할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웹3.0 또는 블록체인 분야가 투기적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해당 신기술이 대중의 삶에 파고 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른 말로, 캐즘(Chasm)의 덫에 빠진 것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캐즘이란 균열을 뜻하는 단어로서 기업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박사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이는 첨단기술관련 분야에서 혁신성을 중시하고 가격 민감도가 낮은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초기시장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주류시장 사이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는 단절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캐즘을 극복한다는 것은 실용주의자 계층을 공략한다는 의미이고 일단 이들 계층의 지지를 받고 나면 주류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는 이 실용주의자 계층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록체인이 국제 송금 등에서 탁월한 효용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사실 국제 송금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웹3.0 지갑 관리, 수신자 확인이 어려운 이체 과정, 토큰 규격 및 표준의 난해함 등 온갖 진입장벽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블록체인 대중화의 여정이다. 


캐즘의 발생은 혁신의 불연속성에서 기인한다. 불연속적 혁신은 소비자들의 사용방식이나 기존 인프라에 있어 큰 변화를 요구한다. 신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추고 그 편익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얼리 어답터 계층까지는 침투가 가능하지만 시장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실용적인 소비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상당한 조정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아무런 가치가 정의 되지 않은 채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이는 밈코인(Meme coin) 현상도 캐즘이 원인일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치가 무한대를 향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데, 이를 받아줄 주류 서비스나 제품의 등장은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로 인한 '넥스트' 투자 네러티브의 부재는 비합리적인 밈코인 광풍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모든 신기술 초기에는 혁신의 불연속이 존재했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자동차,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도로와 통신망이라는 초기 인프라 구축이 국가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에 체감이 덜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보급이 더뎠던 2000년대 초 '.com'만 붙으면 주가가 폭등했던 닷컴버블은 현재의 밈코인 광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은 수많은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이용단가가 비싼 서비스다. 웹3.0 대중호가 더딘 것은 인프라 구축이 순수 민간 자본에 의존하여 이뤄지고, 분산원장 특성상 특정 주체의 독단적 노력이 아닌 다수의 합의와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혁신의 불연속성을 줄이기 위한 웹3.0의 노력은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를 통해 이메일로도 손쉽게 지갑을 관리하고 복잡다단한 블록체인 서비스 사용경험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 또한, 이더리움을 보다 싸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레이어2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는데, 최근 이뤄진 이더리움의 덴쿤 업그레이드는 이러한 레이어2가 더욱 저렴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변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한편, 웹3.0 업계가 캐즘을 넘어서기 위해 보다 전략적인 접근을 고려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시장 세분화를 통해 주류시장의 일부 계층을 타겟으로 선정하고 이들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통해 우선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이다. 이는 여러 사례에서 효과가 입증된 전략으로 '볼링핀 전략'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이 볼링핀 전략이 구사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블록체인 게임 분야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공 사례가 등장하진 않았으나, 기존 게임 내 구축된 경제 생태계는 웹3.0이 추구하는 경제 모델을 위한 최적의 벤치마크가 되고 있다. 기존 게임 유저들이야 말로, 게임 아이템 등 가상자산의 개념과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집단이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본인이 공들여 획득한 아이템 및 게임 내 재화를 자본화 시킴으로써 상호호혜적 이해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기에 블록체인 게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확충 정도에 따라 제품의 사양을 조절해 나가는 방법, 기존서비스에서 혁신 서비스로 넘어가는 단계에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브릿지 서비스 제공(업계 용어로 웹2.5 접근이라고도 한다) 등의 전략이 있다.


블록체인 혁신을 두고 과거 인터넷이 등장했던 시기와 비교해보려는 시도가 있다. 과연 지금의 블록체인 발전 단계는 과거 인터넷이 지나온 과정 중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아찔했던 가격 흐름만 놓고 보면 이미 닷컴버블의 시대 이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반면, 캐즘의 시각으로 본다면 실용주의적 소비자, 즉 주류시장의 수용 이전이라는 점에서 현재는 닷컴버블 이전의 시점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즉, 블록체인 혁신은 이제야 겨우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기에, 지금이라도 자세를 고쳐 앉아 이 큰 변화를 어찌 맞이할지 고민해봐야 할 수 있다.


●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박태우 이사는 2011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학사 학위를, 2015년 Columbia University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증권의 채권 애널리스트 및 한화자산운용의 Credit Strategist로 재직하며 10년 넘는 기간 채권 전문가로 활동했다. 또한,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계열사 두나무투자일임에서 맵플러스를 주도했다. 현재는 가상자산 생태계에 투자하는 크립토VC인 VistaLabs(비스타랩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 외부 필자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taewoopark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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