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당 오너 일가, 상장폐지가 '꽃놀이패'?
정리매매시 지분 확대 가능…전통주 사업 의지에도 '물음표'
이 기사는 2020년 02월 18일 16시 4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권일운 기자] 국순당의 상장폐지 위기가 오너 일가에게는 '꽃놀이패'나 다름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장 폐지 과정에서 지분을 사들여 회사 내부의 알짜 자산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장이 폐지된 뒤에는 본업인 전통주 사업을 접고 '패밀리 오피스'로 거듭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순당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2019년 회계년도 결산에서도 영업손실이 확정되면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를 거쳐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된다. 상장 폐지를 전후한 시점에 주가가 폭락하게 되면 오너 일가에게도 막대한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국순당은 실적 악화로 상폐 처리되는 기업들의 여느 기업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요컨대 상장 유지에는 문제가 있을 지 모르지만, 회사의 체질 자체는 대단히 우량하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국순당의 주력 사업인 전통주 제조·판매가 부진한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재무 구조와 유동성은 좋아지고 있다.


국순당은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2064억원의 순자산(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가운데서 현금성 자산은 310억원에 달한다.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제외하고 추산한 순현금만 289억원이다. 반면 거래정지 직전 시점의 시가총액은 642억원으로 자기자본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는 지금 당장 회사를 청산하고 자산을 분배하는 것이 주주들에게는 이득이다.


이는 국순당의 최대주주인 배중호 대표 일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 재무 전문가들이나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배중호 대표 일가가 상장폐지에 초연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다면 국순당 주주들은 정리매매 기회를 얻게 된다. 상장 폐지 이후에는 사실상 현금화가 불가능한 주식을 이 기간에라도 처분하라는 취지다. 정리매매 기간 동안의 주가는 '반짝' 급등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매도세가 이어지며 폭락을 거듭하게 된다.


배중호 대표 일가에게는 정리매매가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 헐값에 출회하는 매물을 사들여 과반에 약간 못 미치는(지난해 3분기 말 기준 42.01%) 지분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심지어 배중호 대표 일가의 경우 여느 코스닥 기업 오너들과는 달리 국순당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도 전무해 주가가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지배력을 상실할 위험이 없다.


상폐 결정→정리매매→지분 매집이라는 수순을 거치면 배중호 대표 일가는 국순당을 공개매수 방식으로 자진 상폐시키는 것에 준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통상 자진 상폐는 회사의 재원을 투입해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공개적으로 매입하고, 매입 주식을 소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공개매수 방식으로 자진상폐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주주들이 납득할 만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장가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가가 책정된다. 


하지만 국순당의 경우 상폐 결정만 내려진다면 오너 일가가 헐값에 지분을 사들일 수 있게 된다. 오너 일가가 지분 매집에 투입한 재원을 반환받으려면 유상감자 형태로 주식을 소각해버리면 그만이다. 앞서 그랬듯 배당을 단행한다면 소액주주들에게 분산시키지 않고 배당금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 오너 정점의 의사결정 효율성 측면에서도 상장 기업보다는 비상장 기업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상폐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본업이자 모체 격인 전통주 사업을 아예 접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순당은 전통주 사업에서는 손실을 내고 있지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출자나 벤처캐피탈 사업에서는 쏠쏠한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 근거 가운데 하나다. 전통주 부문을 청산하거나 매각한 뒤 국순당을 오너 일가의 개인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를 일컫는 패밀리 오피스로 변모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국순당의 전통주 사업 의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의문 부호가 제기돼 왔다. 국순당의 등기임원 가운데서 배중호 대표를 제외하고서는 전통주 사업 내지는 식품 사업의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이력을 가진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사실상 배중호 대표에 이은 '2인자'에 해당하는 차승민 상무는 IBM과 SK텔레콤을 거친 IT와 기업 전략 분야의 전문가다. 배중호 대표의 후계자로 지목된 장남 배상민 상무 역시 기업 컨설팅 분야에 재직해 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모 자본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오너 입장에서는 비상장 상태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라며 "국순당 오너들의 경우에도 회사의 근간을 뒤바꾸거나 자원 배분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상장사 형태가 훨씬 바람직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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