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라면 명가' 농심을 일궈낸 신춘호 회장이 작고하면서 소원했던 롯데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범롯데가(家)'를 이끌 2세 경영인들이 끝내 앙금을 풀지 못한 1세대 창업주를 대신해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춘호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갈등은 동생인 신 회장이 독립의 길을 걸으면서 불거졌다.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신 회장이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을 창업해 라면(롯데라면) 사업에 진출한 까닭이다. 롯데와 사업 영역이 겹칠 뿐 아니라 제품 이름에 '롯데'가 들어간 것에 신 명예회장이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신 명예회장이 '롯데'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자 동생 신 회장은 1978년 현재의 농심으로 사명을 바꿨다. 이를 계기로 두 형제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선친의 제사도 따로 치를 정도로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수 십 년 간 특별한 교류가 없던 두 형제는 지난해 1월 신 명예회장이 타계할 때까지도 화해의 악수를 하지 못했다. 앙금 때문인지 노환 때문인지 불참 사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 회장은 끝내 신 명예회장의 빈소와 영결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신 회장의 두 아들인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큰 아버지의 빈소를 찾았다.
관심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작은 아버지의 빈소에 찾아 화답할지 여부에 쏠린다. 만약 신동빈 회장과 사촌인 신동원, 신동윤 부회장과의 조우가 이뤄지면 롯데와 농심이 표면적으로 나마 화해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 1세대가 남겨놓은 숙제를 2세 경영인들이 풀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광경은 신춘호 회장의 빈소에서는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빈 회장 뿐 아니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모두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까닭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 동선은 사적인 부분이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SDJ 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동주 회장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코로나19로 인해 불참한다는 의사를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와 농심 2세대들이 관계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신동원, 신동윤 부회장이 신격호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았던 만큼 신동주, 신동빈 회장들도 어떤 식으로는 화답하는 자리를 갖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대외 여건으로 인해 당장 롯데와 농심 2세들이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귀국 후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나면 도의적 차원에서도 양가가 만남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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