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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웹3.0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8일 11시 2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태우 비스타랩스 이사] 올 들어 일본 닛케이지수가 30% 가까이 상승하며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는 3만300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버블 경제 시기인 1990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점 수준이다. 한국 코스피(17.5%) 및 미국 다우지수(4.1%)보다도 크게 앞서고 있다. 뜬금없이 증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본 자본시장의 긍정적 에너지가 블록체인 업계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겪은 30년 장기불황의 가장 뼈아픈 부작용은 다름 아닌 젊은 세대의 좌절이다. 특히 90년대 이후 세대는 부의 대물림으로 유명한 일본에서 자수성가와 같은 성공의 롤모델을 경험하지 못했다. 뭘 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이 일본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커녕 구직 단념자가 양산되는 배경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좌절감에도 최근 일본 블록체인 업계는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가 가상자산 규제를 완화하자 게임사를 비롯한 일반 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졌다. 일본이 홍콩에 이어 글로벌 웹3.0 시장의 새로운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자본 유입은 유의미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웹3.0에 관해 규제 일변도였던 일본은 최근 적극적인 육성 기조로 선회하며 세금 완화 등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지난해 스타트업 관련 전향적인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5년 내 스타트업 수를 현재의 10배인 10만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을 100개로 늘린다는 목표 아래 10조엔(약 91조 158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웹3.0 기업도 포함된다.


기시다 총리는 직접 IVS 크립토 교토 및 웹엑스(WebX Japan) 등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자처하며 웹3.0 시장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중 국가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는 것은 이례적일뿐더러 정책 관련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홍콩보다 일본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IVS 크립토에서 기조 연설하는 기시다 총리. (사진 = IVS)

한편 일본의 가상자산 열풍이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2013년 전후 일본에는 글로벌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가 있었다. 이후에도 비트플라이어가 가상자산 거래량 1위를 기록하며 2016년 당시 세계 비트코인 거래 시장에서 엔화의 시장점유율은 60%에 육박했다. 


일본 가상자산 흥행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는 주식에 대한 소액 투자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의 주식 거래 최소 단위는 100주로 투자를 위해 기본 수백에서 수천 만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가상자산은 이러한 진입장벽이 없어 젊은 세대도 쉽게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런데 2014년 마운트곡스가 해킹으로 비트코인 85만개를 도난당해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선 가상자산 사고 방지 및 투자자 보호 관련 입법이 추진됐다. 그 결과 일본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금융청 산하에서 관리하기 시작했고 고객 신원확인, 자산 보관 분리 의무 등을 따르도록 했다. 또한 금융청 산하 자율기구인 일본가상자산거래업협회(JVCEA) 심사를 거쳐 화이트리스트에 등재된 가상자산 상장만 허용했다. 가상자산 업계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듯한 환경으로 웹3.0 열풍이 한창이던 2021년 전후 일본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반면 거래소 자산과 고객 자산 간 분리를 의무화한 덕에 FTX 파산 등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상법상 회사로 간주해 규제 테두리 안에 넣고 요건에 미달하는 거래소는 퇴출시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한 발치 뒤에서 바라보며 착실히 대응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자금결제법이 개정됐다. 가상자산을 법률상 재산적 가치로 인정해 가상자산 결제를 법률적 테두리 내로 포섭한 것이다. 이에 현금 대신 비트코인 등을 받는 상점이 조금씩 늘어났다. 가상자산에 대하여 줄곧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다른 국가와 달리 명확한 규제 틀을 잡아 나간 것이다. 당시 이러한 일본의 대응이 과한 수준으로 비쳤지만 역설적으로 규제 틀 내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시도와 '매스아답션(대중적 수용·Mass Adoption)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 결제를 받는 일본 빅카메라 매장. (사진 = 니케이아시아)

일본 정부는 내친김에 가상자산 세금 요건을 완화하고 있다. 일본 국세청(NTA)은 가상자산 발행자의 미실현 수익에 대한 30%의 법인세를 징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2년 상정된 가상자산 소득세 개정안은 가상자산 소득세 최대 세율을 55%에서 20%로 경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웹3.0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는 정부의 지원뿐만이 아니다. 커뮤니티 충성도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웹3.0 생태계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 정서와 맞닿은 지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한 면모를 보여온 게임 및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다양한 지적재산권(IP)이 웹3.0 프로젝트로 재탄생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메인넷인 오아시스는 일본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서 현지화와 규제 솔루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오아시스는 반다이남코, 세가, 스퀘어 에닉스 등 일본 기업뿐만 아니라 넥슨, 넷마블 등 한국의 대형 게임사들과 협업해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오아시스의 도미닉 장 총괄은 "일본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오아시스 플랫폼을 규제 솔루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오아시스 네트워크. (사진 = 오아시스)

과거 일본은 'IT산업의 갈라파고스'라는 오명이 있었다. 인터넷 및 모바일 시장에서는 뒤처졌지만 웹3.0으로 대변되는 블록체인 혁명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는 모습이다. 올해 일본 증시의 선전 역시 이러한 기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그 에너지만큼은 부인할 수 없으며 웹3.0을 비롯한 미래 산업에서 일본 시장의 약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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