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
삼성전자, 세계 최초 타이틀에 앞서 고객사와 신뢰 쌓아야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09시 3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항공 사진. (제공=삼성전자)


[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요? 참 고민스럽네요."


얼마전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 관계자를 만났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파운드리 업체 간 경쟁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 사업부다. 최근 TSMC가 엔비디아와의 '끈끈한 관계'를 자랑하자, 삼성 파운드리도 이에 질세라 메모리·파운드리 턴키(일괄 생산) 체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과연 고객 입장에서는 삼성 파운드리와 TSMC 가운데 어느 회사가 더 믿음직스러울까. 질문을 받은 그는 한참 고민하다 "1등은 1등인 이유가 있다"고 말을 아꼈다. 화제는 곧장 다른 이슈로 넘어갔다. 하지만 업계 내 삼성 파운드리의 신뢰도가 견고하지 않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대화였다. 


이 같은 시장 분위기는 점유율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는 45.5%포인트. 막대한 투자에도 삼성 파운드리 점유율은 좀처럼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입,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 파운드리가 제자리걸음만 한 건 아니다. 지난 2022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도입,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GAA는 TSMC가 3나노 공정에 적용하는 핀펫(FinFET)보다 한 단계 더 뛰어난 기술이다. TSMC도 2나노 공정부터는 GAA를 적용할 예정이다. 


첨단 기술은 분명 반도체 회사 경쟁력을 가늠할 때 쓰이는 지표 중 하나다. 우수한 기술력은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1위 타이틀을 지킬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기도 하다. 다만 기술력이 곧 파운드리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여러 전문가들은 "같은 반도체 산업으로 묶여 있지만 파운드리와 메모리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모리 DNA로 파운드리 사업을 하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납기 데드라인이 화요일 아침이라고 쳤을 때, 삼성 파운드리는 수요일 오후에야 생산이 늦어지고 있다고 연락하는 회사다. 어떤 고객사가 삼성 파운드리를 믿겠나. 한 지붕에 아래 MX사업부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범용성이 짙은 메모리는 제조사가 '갑'이 될 수 있었겠지만, 파운드리는 '을'의 입장에서 고객사 하나 하나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고객과 약속한 날짜와 물량에 맞춰 우수한 품질의 반도체 칩을 납품하는 게 곧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이다. 여기에 철저한 서비스 정신은 필수적이다.


삼성 파운드리 부진에는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테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건 파운드리 업체와 고객사 간 끈끈한 관계는 신뢰 관계 없이 형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화려한 첨단 기술보다는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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