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시장 왜곡]
주관증권사, 발행기업 수요예측 편법참여 논란
②대표주관 수임 위해 회사채 투자수요 형성…"공모 가격결정 왜곡" 지적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1일 07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의도 증권가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기업의 회사채 발행과정에서 주관사로 참여한 증권사들이 자기계정(PI)을 활용, 수요예측에 직접 참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일부 증권사들의 공공연한 관행이지만 최근 롯데쇼핑 회사채 사례처럼 특정 만기가 주관사 물량으로 빼곡히 채워지고, 이후 매도 손실까지 나오면서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관 증권사들이 발행사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근거는 만기가 다를 경우 별개 채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개 채권으로 간주되더라도 발행사와 주관사의 이해관계가 개입된다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 "롯데쇼핑 2년물과 3년물은 다른 채권" vs "합리적 가격결정 근본 훼손"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공모채 발행 대표주관사는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한다. 금융투자협회는 모범규준을 통해 수요예측에서 발행예정금액 이상의 유효수요가 있다면 인수회사가 자기계정으로 해당 회사채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원칙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해 미매각이 발생하거나, 발행조건 확정 이후 투자자의 미청약·미납입이 발생할 경우에만 주관사가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관사단에 포함된 일부 증권사들이 발행사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만기가 다를 경우 별개의 채권으로 간주한다는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다.


롯데쇼핑 회사채 발행 과정을 살펴보면 대표주관사단은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DB금융투자, 키움증권 등 7곳이었는데 ▲제96-1회차(2년물) 한투증권 ▲제96-2회차(3년물) KB·한투·신한·미래에셋·삼성·DB·키움증권 ▲제96-3회차(5년물) KB·한투·신한·미래에셋·DB·키움증권 등으로 각 만기마다 대표주관사들이 다르게 설정됐다. 인수단인 NH투자증권, 대신증권, IBK투자증권은 모두 제96-1회차에 배정됐다.


금융위 유권해석을 앞세워 주관사들은 일제히 2년물인 제96-1회차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해당 회차에 한국투자증권만 주관사로 배정되면서 나머지 6개 주관사들이 투자할 명분이 생긴 것이었다. 삼성증권과 DB금융투자가 200억원씩, 신한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KB증권은 100억원씩 주문을 넣었다. 5년물인 제96-3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주관에서 유일하게 빠진 삼성증권은 이 회차에서 100억원의 투자수요를 형성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유권해석에 따라 주관을 맡지 않은 만기물은 다른 채권으로 보고 투자한 것이기에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반면 증권사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만만치 않다. 한 대형 증권사 DCM부문 본부장은 "금투협 모범규준에서 인수회사가 자기계정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근본적인 배경은 시장에서 공모금리가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되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발행사 눈치를 봐야 하는 주관사가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공모금리를 왜곡해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

◆ 가격결정 투명성 위해 도입된 수요예측제도…또다시 발행사 우위 시장 변질


회사채 발행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이 '손실 매도'를 감내하면서까지 발행사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것은 대표주관을 수임하기 위한 영업 전략이다. 지난해부터 금리인상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으로 영업 환경이 악화된 증권사들은 부채자본시장(DCM)을 중심으로 한 투자은행(IB) 부문에 힘을 쏟는 추세다.


특히 DCM 업계는 전통적인 IB 중 하나로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대기업들과 오랜 네트워크를 다져온 시장이다. 이 틈을 비집고 DCM 영업에 나서는 증권사들은 수수료 인하, 계열사를 동원한 수요예측 참여 등의 공격적인 영업 방식을 앞세우곤 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증권사 자기계정을 활용해 대표주관을 맡지 않은 만기물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사례처럼 주관사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발행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이 고착화되면 여기에 타협하지 않은 증권사들이 오히려 회사채 대표주관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공정한 프라이싱(가격책정)을 이끌어 내야 할 증권사들이 가격왜곡에 앞장서는 모순적인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1년차를 맞은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는 당시 발행사 우위의 시장에 가격결정 투명성을 불어넣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 2012년 수요예측 도입 전 회사채 발행금리는 사실상 발행사의 요구에 따라 정해지곤 했다. 통상 발행사들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증권사를 통해 기관투자가들의 희망 금리와 물량을 파악, 가장 유리한 조건을 택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제도 도입을 기점으로 공모시장에서 가격결정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증권사들이 사각지대를 찾아 '을'을 자처하면서 또다시 발행사 우위의 시장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증권사 IB들이 내부 부서를 동원하는 것은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컴플라이언스부문 본부장은 "롯데쇼핑의 회사채 사례처럼 주관사들의 내부 부서들이 낮은 금리에 집중적으로 참여한 상황은 IB부서와의 사전 협의를 거친 정황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높은 금리로 배정받는 것이 유리한 리테일 부서가 낮은 금리로 참여하겠다고 동조한 '월크로싱(wall-crossing)' 근거를 남길 리도 없어 컴플라이언스 관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이 모집한 2년물(600억원)이 대부분 주관사단 물량으로 채워졌다.(자료=IB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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