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채권시장의 담합
국고채 전문딜러 담합으로 몰아세운 당국, 회사채 담합 정황엔 '침묵'
이 기사는 2023년 08월 07일 08시 3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사진=딜사이트)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과점 체제인 금융과 통신 산업의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 강화를 위한 특단 조치를 마련하라"


검찰 출신 대통령의 서슬 퍼런 칼날이 올 초 금융권을 향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이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전방위적인 조사에 나섰다. 당초 은행을 타깃으로 삼았던 공정위는 증권·보험 등 금융권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넓힌 상태다. 특히 국고채 입찰 과정에서 담합 혐의가 의심된다며 지난달엔 국고채 전문딜러(PD)로 지정된 18개 금융회사(증권사 11개, 은행 7개) 전체를 상대로 현장 조사도 벌였다. 점점 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호통을 의식한 공정위가 담합에 대한 명확한 증거 없이 '보여주기' 식의 현장 조사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고채 전문딜러 기관 사이에서도 "업계가 좁아 기관들끼리 소통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고채 전문딜러 제도가 1999년 도입된 이래 커뮤니케이션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내지도 않다가 갑자기 매부터 드는 게 당혹스럽다"는 말들이 쏟아진다.


공정위의 조사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후진적인 행태가 있었다면 뒤늦게라도 투명하게 바로잡는 게 마땅하고, 실제 국고채 발행시장에서 담합의 여부는 서로 간의 주장이 아니라 조사 결과로 밝혀질 일이다. 다만 공정위의 의욕적인 조사가 업계 안팎에서 당위성과 권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은행에서 금리 담합 정황을 찾기 어렵다 보니 뭐라도 건지려고 먼지털기에 나서고 있다는 눈초리가 팽배하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공정위가 대통령의 발언 이후 럭비공처럼 튀어 나가는 조사가 아닌,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문제의식을 공유한 뒤 조사를 진행했다면 보다 권위와 신뢰감 있는 감독기관으로 비쳤을 터다.


국고채 발행시장의 엄격한 잣대가 회사채 발행시장에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최근 롯데쇼핑의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는 주관사단에 포함된 일부 증권사들이 수요예측에 직접 참여해 낙찰금리 하락을 주도했다. 동일한 발행사의 채권이라도 만기가 다르면 별개 채권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악용, 주관을 맡지 않은 만기물에 증권사들이 투자수요를 형성해 준 정황이었다. 증권사들이 발행사의 금리를 낮춰주는 '짬짜미' 작업이 이뤄지면서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은 물량에서 배제됐다.


담합을 바로잡고 경쟁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당국의 칼날이 한쪽으로만 향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국고채 전문딜러들의 볼멘소리 속에서도 시장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잣대는 시장 내 모든 영역을 빠짐 없이 관통해야 한다. 당국이 '선택적 엄격함'에 빠지는 순간, 권력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권위는 잃게 된다. 국고채 발행시장의 입찰을 담합이라고 규정하기 위한 '앞단의 일관성'을 놓친 당국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채권시장 내 모든 입찰에서 담합의 소지를 없애는 '뒷단의 일관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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