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면초가' 1세대 영캐주얼 브랜드
SPA 브랜드 중심 재편·판매 채널 변화에도 기존 방식 고수
이 기사는 2023년 03월 10일 08시 3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TBJ (제공=TBJ 홈페이지)


[딜사이트 이수빈 기자]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새삼 느껴진다. 마리떼프랑소와 노티카, 리 등 90년대 청소년들의 옷장을 가득 채웠던 브랜드들이 뉴트로 열풍을 타고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반대로 2000년대를 풍미했던 국산 1세대 중저가 영캐주얼 브랜드들은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이다.


TBJ, 앤듀를 전개하던 한세엠케이는 지난해 해당 브랜드의 생산 종료를 알렸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브랜드 사업을 철수하게 됐다. 이미 작년 연말 브랜드 사업은 정리했고 올해는 재고만 소진할 예정이다.


또한 캐주얼 브랜드 NII를 운영하는 세정그룹은 앞서 2021년 이 브랜드를 시장에 매물로 내놨지만 만성 적자 상태라 새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외에도 클라이드앤, 버커루 등 수많은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들이 위태롭게 명맥을 이어오거나, 사업 종료 수순을 밟고 있다.


이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건 변화에 둔감했던 탓이다. 국내 패션 시장은 2005년 유니클로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대량 생산·판매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는 SPA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특히 캐주얼 패션을 선보인 유니클로는 트렌드 변화에 발맞추기보다 기본 아이템 위주로 판매를 이어가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더해 유명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지속하며 남다른 마케팅도 선보였다. 지금껏 유니클로가 국내서 살아남은 것도 이러한 전략 덕분이다.


유니클로의 가파른 성장세에 2010년대부턴 국내에서도 토종 SPA브랜드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국내 1세대 캐주얼 브랜드들은 기존 정통 판매 방식을 고수했다.


또 일부는 1세대 브랜드들은 가두점 위주의 영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사실 영캐주얼을 비롯해 1세대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가두점을 크게 확장하며 사업을 해온 터라 이 방식을 하루아침에 접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백화점·아울렛·온라인 등으로 채널이 변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고집하면서 매출 감소, 고정비 확대로 재무 지표는 망가지게 됐다.


현재 이들은 뒤늦게 다양한 브랜드에 뛰어들며 경쟁력을 높이고 온라인몰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녹록치 않아 보인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진리도 지금과 같은 뒤쫓기 영업전략 앞에선 통하지 않는 듯하다.


다시 돌아온 해외 브랜드들의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신세계인터가 전개하는 노티카는 무신사에 독점공급하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재출시했으며, 마리떼는 '더현대 서울' 지하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채널과 타겟을 명확히 한 대신 이전과 다른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국내 토종 브랜드들은 고유의 정체성에 집중한 탓에 채널, 마케팅 등 다양한 판매 수단을 놓친 것 같다"며 "현재 전개하는 브랜드를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벼랑 끝에 서있지만 언젠가 국내 브랜드에도 마리떼프랑소와처럼 돌아올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론 기회를 잡기 어렵다. 오래된 고집은 버리고 변화에 빠르게 탑승해야 돌고 도는 패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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