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물가 시대의 기회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역전략 펼쳤으면 어땠을까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0일 14시 2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GS25 모델이 물가안정 콘셉트로 기획한 PB라면 '면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제공=GS리테일)


[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최근 코로나보다 아프다는 독감으로 앓아 누운 덕에 오랜만에 본죽을 맛봤다. 본죽을 먹을 때면 의외로 1인분을 시켜도 혼자서 먹기 힘들 정도로 푸짐하다고 느껴진다. 이날도 1인분을 채 다 먹지 못했다. 온라인에서도 본죽 1인분을 두고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정말 1인분이 맞냐는 말부터 '가성비' 좋다는 말까지.


본죽이 푸짐한 양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창업주의 경영철학이다. 그는 "음식점은 못 팔아서 망하는 경우는 있어도 퍼줘서 망하는 경우는 없다"며 많이 주는 걸 원칙으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 죽이라는 특성도 한 몫 했다. 다른 요리보다 같은 가격에 양을 유지하기 쉽다. 


물론, 본죽이 싼 편은 아니다. 흔히 먹는 '쇠고기야채죽'이 1만원 가량이니 말이다. 그런 본죽이 최근 가성비 타이틀을 얻게 된 건 고공행진하는 물가 영향이 컸다. 한 끼에 만원을 훌쩍 넘기는 요즘 본죽 1인분 양이 돋보이면서 수혜를 본 셈이다. 물론 본죽도 과거에 비해 가격이 올랐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본죽 1인분 양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해 식품업계가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가격 인상에는 민감하지만 용량 차이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일종의 '꼼수'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오리온, 동원F&B, 롯데제과, 오비맥주 등 굴지의 식품기업들이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로 거론된다. 오리온은 핫브레이크의 중량을 기존 50g(그램)에서 45g으로 줄였고, 동원F&B는 100g짜리 참치캔을 90g으로 축소했다. 오비맥주는 카스 묶음팩 중 375㎖(밀리리터) 번들 제품 용량을 5㎖씩 줄였다. 이들은 모두 '원가 상승 부담'을 이유로 내세웠다.


식품기업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 논리를 따르는 기업의 입장에서 비용이 증가하면 가격을 인상하는 게 당연한 순리다. 여기에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로 식품기업들을 한데 모아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나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꼼수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는 탓에 요즘만큼 가성비 타이틀을 달기 쉬운 환경도 없기 때문이다. 본죽처럼 말이다. 물론 식품기업들이 단순한 부가재료만 사용하는 죽같은 제품을 생산하지는 않으니 비교할 만한 대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른 전략을 펼쳤다면 가성비라는 평판과 소비자들의 신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엔데믹 전환 후 본죽 또한 원가부담에 수익률이 하락했다.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의 2022년 별도기준 영업이익률은 4.8%로 전년 대비 2.0%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같은 기간 매출은 20.5%(2482억원→2991억원), 영업이익은 16.4%(124억원→144억원) 증가했다. 수익률 하락폭 이상으로 매출이 증가하면서 이를 상쇄한 셈이다. 죽이라는 특성상 원가부담이 덜한 덕도 있었지만 매출 급증은 눈여겨볼 만하다.


슈링크플레이션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역슈링크'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편의점·마트에서 자체 PB상품의 용량을 오히려 늘린 것이다. 반응도 뜨겁다. GS25가 일반 컵라면보다 용량을 22% 늘려 선보인 컵라면 '유어스면왕'은 출시 2주 만에 판매 순위 8위에 등극했다. 이마트24의 '더빅 참치마요 삼각김밥' 매출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식품기업들의 꼼수에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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